top of page
검색
이대열 목사

“노나메기”


평생을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에 바친 백기완 선생이 2월 15일 향년 89세의 나이로 별세하셨다는 기사를 보았다. 내가 미국에 온지 오래 되었지만 명동성당 어디에선가 백기완 선생이 하얀색 한복을 입고 마이크를 잡고 거침없이 연설을 하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1986년 봄과 1988년 가을 사이에 나는 지하철 명동역 근처에 위치한 신일빌딩에 있는 무역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회사 빌딩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죽 따라가면 태극당, 신도피자, 대한모방 매장을 비롯하여 좀 더 내려가면 충무김밥과 명동칼국수가 있었다. 지금 구글로 이 지역을 찾아보니 명동 10길로 표시되어 있다. 나는 이 길목을 직장생활 내내 하루도 거루지 않고 때로는 수억 수십억이 되는 돈을 당좌수표나 현금을 가지고 은행과 제 2 금융권을 드나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한 무리의 대학생들이 전두환 정권에 대한 항의집회를 하다가 명동성당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자 시민들이 명동성당 근처에 연결된 담으로 먹을 음식을 전달하였고 저녁이 되면 명동입구는 전투경찰의 최루탄과 시민들의 돌멩이들이 엉키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노태우가 6월 29일 수습안 발표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졌다.

당시 독재정권에 맞섰던 백기완, 문동환, 김영길 같은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연설들은 정치에 무지하고 관심도 없었던 나에게도 강한 울림을 주었다. 이번에 백기완 선생의 별세를 통하여 그가 꿈꾸던 사회가 “노나메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인이 임종 직전 쓴 마지막 글귀인 노나메기는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리하여 모두가 올바로 잘 사는 세상'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노나메기는 오늘의 노동현장이나 현실을 보면 요원하게 보이는 일종의 유토피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나메기를 유토피아라고 생각하기에 현실에 안주하고 때로는 타협하면서 개인의 행복에 집중하며 산다. 그러나 백기완 선생은 노나메기를 외치며 한평생을 헌신한 선지자의 삶을 살았다.

나는 그가 성도의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그의 꿈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던지며 세상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려고 한평생을 바친 것을 높이 평가하고 존경한다.

그런데 그가 꿈꾸던 노나메기가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임하게 하신 하나님의 나라 사상과 유사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가난한 자가 없고 모두가 만족하고 행복한 세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도가 때로는 가난하고 질병에 걸리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은 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노나메기는 한민족의 정서 속에서 만들어낸 이상향에 그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실 지복의 나라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도의 삶속에 이미 침투하여 임하였기에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과 의를 위하여 기꺼이 자기의 목숨까지도 던지게 만든다. 성도는 헐벗고 고통 받고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선지자의 사명으로 살아야 한다.

조회수 47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