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자의 만나 (6)”
- daeyeoul
- 2020년 2월 8일
- 1분 분량
3.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안식일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하나님을 예배함을 통하여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보장받아야 한다.
안식일은 밖에 나가 먹을 양식을 거둘 필요가 없었고 그날은 만나도 내리지 않았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천지 창조하신 후 쉬던 날이다. 성경은 그날을 하나님의 날이라고 했고 거룩하게 지키라고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그날 사사로운 일이나 오락을 금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로 지켰다.
(출34:21) “너는 엿새동안 일하고 제 칠일에는 쉴지니 밭 갈 때에나 거둘 때에도 쉴지며”
“쉰다” 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 쉬는 것과 자기를 위해 쉬는 것이 있다. 그리고 참 안식은 영적인 것이며 정신적인 것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참된 쉼은 먹고, 마시고, 여행을 하고, 돈을 쓰는데 있지 않기 때문이다. 참된 안식은 영혼이 평안함을 누리는 것이다. 내 영혼이 참 쉼을 얻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모셔야 한다.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참된 안식의 비결인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향해서 살도록 인간을 창조하셨다. 여기서 “향하다”는 말은 단순히 방향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기원되어진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종착역이 되신다. 따라서 하나님은 인간의 쉼과 안식의 자리가 되신다. 행복의 자리가 되신다.
어거스틴은 18세에 사생아를 낳고, 인간의 목마른 사랑을 갈구했다. 육신의 갈증은 인간을 허영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그는 거짓된 마니교에 빠졌다. 그러나 자신의 영적인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신플라톤 철학에 탐닉했지만 진정한 영혼의 만족을 얻지 못했다. 그 결과 영혼의 목마름 속에서 어거스틴은 울부짖지 않았는가? 울부짖음 속에서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회심하고 이제는 마음의 의심과 어둠이 사라지고 진정한 쉼과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기보다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으로 변화시켰다. 자신의 의지를 변화시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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