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검색
daeyeoul

“부흥의 파도를 사모하며 (5)”


1872년 무디의 영국 런던 집회에서 10일 동안 사 백 명이 회심하였습니다. 이 역사의 뒤편에는 마리안 아르 라르드라는 장애인의 중보기도가 있었습니다. 침대에 누워 지내는 마리안은 시카고 무디의 부흥소식을 들은 후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무디를 보내어 달라고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찰스 피니도 1830년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당시 인구의 10%을 짧은 기간이었던 몇 달 안에 구원으로 인도하였는데 이 일은 아벨 클레리의 중보기도 때문이었습니다.

피니는 기록하기를 “클레리씨는 나의 모든 집회를 위해 기도했다. 내가 집회장소를 떠난 뒤에도 남아서 기도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타난 적이 없으나 그의 전 삶을 바쳐 나를 위해 기도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빌리 그레이엄도 1949년 LA 부흥집회가 대중 전도의 획을 긋게 되었습니다. 그 어느 때 보다도 성공적이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그 당시 중보기도 특공대가 조직되어 엄청난 양의 중보기도를 쏟아 부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빌리 그레이엄도 중보기도를 설교보다 그리고 전도하는 것보다 중요시 여기게 되었습니다.

매년 20만 명의 목회자를 훈련시키는 피터 와그너 교수는 영적 전쟁을 위한 중보기도를 언급하면서 본인 자신을 위한 중보기도 동역자가 120명이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지도력 훈련의 대가인 죤 맥스웰도 100명의 중보 기도자를 두고 있습니다.

토레이도 중보기도를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3,000명이나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부흥을 경험하였던 사람들은 그들을 위한 중보기도자들이 있었습니다. 열매맺는공동체에 성령의 바람과 불을 사모한다면 내가 먼저 중보기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흥을 위한 간절한 기도 없이 하나님은 부흥의 파도를 일으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조회수 16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