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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넘어 은혜로...”

  • 이대열 목사
  • 2021년 1월 17일
  • 2분 분량

옛말에 '아이는 자기 먹을 것을 갖고 태어난다'고 한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

한 최소한의 필요가 세상에서 채워진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런 믿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먹을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져서 허기를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생존을 위하여 열심히 노력하는 자가 허기를 채우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생존이 보장된다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무

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에 대하여 걱정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존을 위한 걱정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삶

의 모습이라고 경고하신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새는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 들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새를 기르신다. 너희는 새보다 더 귀하지 않느

냐?,,,,,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보아라. 그것은 수고도 하지 않고 옷감을 짜지도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지만 솔로몬이 온갖 영광을 누렸으나 이 꽃만큼 아름

다운 옷을 입어 보지 못하였다.”

(마 6:26, 28-29)

사람들은 솔로몬의 온갖 영광 즉 재물, 건강, 명예를 얻기 위하여 노력을 기울이

며 그것 때문에 걱정하고 아파한다. 이것은 한마디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쳐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얻은 모든 것이 새가 누리는 풍요와 들판의 백

합화가 누리는 영광보다 못하다고 지적하신다.

왜 그런가?

새는 자기 힘으로 생존을 얻기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생존하기 때문이다.

들판의 백합화는 자기의 생존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노력과 아픔을 겪는 것

보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는 은혜로 인하여 아픔답게 꽃피우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새와 백합화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생존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 힘

으로 만들어 내는 어떤 영광보다 더욱 영광스럽다고 선언하신다.

이렇게 보면 죄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기보다 자기의 계획과 몸부림으로 인생

을 살고자 하는 모든 시도들이다. 또 성도에게 주시는 영광은 우리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으로 말미암을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덤으로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할 것이오.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의 것으로 충분하다.“ (마 6:33-34)

하나님의 은혜는 그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성도는 생존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추구함으로 그 나라의 은혜를

얻고 그 나라의 영광을 누리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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